먼저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자
인간이 만든 모든 제품은 유효기간이 있다. 우유나 통조림 같은 것은 유효기간이 일정하지만, 전자 제품 같은 경우 사용자의 성향에 따라 그 유효기간이 달라질 수도 있다. 제품을 거칠게 다루거나 잘못 작동시키면 당연히 유효기간이 짧아질 수밖에 없어서, 전자 제품을 사면 맨처음 매뉴얼을 꼼꼼히 읽어보라고 당부받곤 한다.
신이 만든 작품인 인간도 유효기간이 있다. 그리고 전자 제품처럼 매뉴얼이 있어 매뉴얼에 맞추어 살아가면 천수를 누릴 수도 있으나, 매뉴얼을 무시하고 멋대로 살면 명대로 살지 못하고 만다. 멋대로 살다가 반백(半百)도 못 되어 노화된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사실 노화란 말은 나이든 분들에게는 대단히 불쾌한 표현이다. 노화를 받아들이는 순간 늙은이 행세를 해야 하고 젊은 날의 의기는 꺾이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퇴행성관절염은 몸을 매뉴얼대로 사용하지 않아 생긴 질환이다. 노화가 주원인이라지만, 노화보다 약화라고 표현하기로 하자. 노화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개선의 여지는 없어 보이지만, 약화라고 하면 한번 고쳐보고 싶은 자신이 생긴다. 게다가 인체의 유효기간은 100년이 넘는다. 100년이라는 유효기간을 채우기 전에 생기는 병은 노화가 아니라 약화임에 틀림없다.
사각형의 삶
《125세까지 걱정 말고 살아라》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노화학자인 유병팔 박사는 ‘사각형의 삶’을 말한다. 즉, 인간이 생리학적으로 최절정기인 25세 때의 젊음을 죽을 때까지 수평으로 유지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는 의미이다. 그는 125세를 보편적인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생물학적 천수라고 말하면서 7, 80세에 죽는 것은 잘못된 생활 습관과 노력 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각형의 삶’을 살고 있다. 최절정기인 꼭지점에서 점차 내리막길을 걸으며 쇠약해지다가 결국은 바닥을 치며 죽고 만다. 이에 대해 유 박사는 확신을 갖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체의 기능 손실을 감소시키면 노화가 억제되고 죽음을 늦출 수 있다.”, “장수를 누리되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한순간에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지난 늦은 봄 이른 아침 서울 서초동에 인접한 우면산 등산로에는 가벼운 평상복이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무리들이 있었으니, 다른 사람들과 달리 화려한 운동복을 입은 데다가 각자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바지는 조금 민망한 느낌이 들 만큼 다리에 쫙 붙는 스타일이었다. 자세히 보니 무리라고 부르기에는 죄송할 만큼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어르신들이었다.
이렇듯 7, 80대 젊은 노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 믿었던 산악자전거며 스키, 롤러스케이트 등을 즐길 뿐만 아니라 고령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마라톤 풀코스를 거뜬히 완주하는 분들도 있다.
문득 이렇게 젊게 살아가시는 7, 80대 청년들을 인터뷰한 글이 떠오른다. 그들은 각종 운동을 골고루 즐기시는 분들이었는데, 산악자전거뿐만 아니라 여름이면 한강에서 윈드서핑을, 겨울이면 스키를 즐기는 등 사계절을 2, 30대 젊은이보다 왕성하고 활동적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 글에서 밝혀진 이들 7, 80대 청년들의 건강 비결은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었다. ‘의사를 믿지 않는다’는 것과 ‘스스로 늙은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의사를 믿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생동적인 삶과 다소 과격하게 보이는 운동 습관이 연령에 비해 무리한 것이 아닌지 어느 의사로 하여금 의구심을 갖게 하였다. 그래서 그 의사는 이분들에게 건강검진을 권하게 되었고, 그들도 호기심이 생겼는지 가벼운 마음으로 검진에 응했다. 검사 결과는 의외여서, 그들 중 일부의 무릎관절은 심한 퇴행성 변화가 생겨 정상적인 보행도 어려울 정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의사는 “이러한 상태로는 심한 통증이 수반되고 보행도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무리한 운동은 피하셔야 합니다.”라고 최종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은 잘 알겠다고 대답하고서는 여전히 산악자전거를, 스키를 즐기기로 했다고 한다.
과연 의사의 진단이 틀렸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의사는 정확하게 진단했고 그 진단 결과에 맞추어 의학적 소견을 말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의학적 소견’이라는 데 있다. 정확하게 잘 진단한 의사에게는 미안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의학적 소견’에 위배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엑스레이 검사상 연골이 닳아 무릎이 거의 맞붙어 있다면 당연히 심한 통증과 보행장애가 오게 된다. 의사는 그러한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조언했지만, 그들은 그러한 ‘의학적 소견’을 무시하고 여전히 씩씩하게 운동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구호는 한 사람이 “구구” 하고 선창하면 “팔팔” 하고 합창하는 방식이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팍 죽자는 뜻에서란다. 유병팔 박사의 사각형 삶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 분들이다.
노화가 아니라 약화다
한의학의 바이블,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첫 편 ‘상고천진론(上古天眞論)’은 다음과 같은 황제(黃帝)의 의문으로 시작된다. “내가 듣기로 옛 사람들은 모두 100세가 넘도록 동작이 굼뜨지 않고 건강했는데, 요즈음은 50세만 되어도 약해져 비실거리는 것이 세상이 바뀐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법도를 잃어서인가?”
이에 대해 신하 기백(岐伯)은 ‘사람들이 법도에 어긋나는 삶을 살아서’라는 요지로 대답한다. 즉, 옛 사람들은 천지의 도(道)를 알고 절도 있는 생활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늙지 않게 하여 모두 천수(天壽)를 누렸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술을 물처럼 마시고, 취한 채로 입방(入房)하고, 말초적인 즐거움으로 제멋대로 살아 겨우 오십에 쇠약해져버립니다.”고 답했다.
사람의 인체를 다루는 의서(醫書) 중에서 으뜸인 《황제내경》에서, 그것도 책의 첫머리에 인간의 정상적인 수명과 몸의 상태를 정의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100세를 넘기게 되고(皆度百歲) 동작에 전혀 지장이 없는 건강 상태’로 살다가 돌아간다(去).
여기서 ‘늙는다’는 말은 ‘망령되게 늙게 만든다(妄作老)’고 하여 ‘늙음’은 부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동작이 굼뜨고 비실거리는 것을 ‘늙을 노(老)’보다 ‘쇠약할 쇠(衰)’라는 말로 표현함으로써, 나이가 들면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늙는 것이 아니라 약해지는 것’이라 인식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독 나이를 따지곤 한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세대를 초월하여 친구가 되고 나이를 막론하고 사랑을 하는 현대에 와서도 우리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한국에 유학 온 중국인들도 처음 만난 한국인들이 나이부터 묻는 바람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심지어 같은 동양 문화권 사람들에게도 한국인들의 나이에 의한 철저한 서열 의식은 힘겨운 노릇이다.
물론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든 이를 공경하니 예의바르고 질서가 있어서 아름답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노인 공경은 ‘양날을 가진 칼’이다. 좋은 말로 공경이지, 나이 든 사람이 노인으로 대접받는 순간 진짜 노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흔히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 한다. 몸도 마음먹기에 따라 늙지 않을 수 있다. 거꾸로 마음먹기에 따라 급속도로 빨리 늙어버릴 수도 있다. 늙었다고 인정하는 그 순간 몸은 늙어버리고 만다.
늙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데는 의사들도 한몫한다. 몸의 노화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은 대부분 의료인이 생산한 정보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어디어디가 나빠지므로 이렇게 주의해야 한다.’, ‘이런 것이 바로 노화의 징조다.’ 등등. 물론 의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경고이다. 그러나 나이 든 분들이 그 말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체념하고 저절로 빠른 속도로 늙어버린다는 데 문제가 존재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인체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노화가 아닌 약화라 정의하고자 한다. 현대의 저명한 노화학자가 말한 125세까지의 사각형의 삶과 《황제내경》의 개도백세(皆度百歲)를 믿어야 한다. 삶에 불편함을 느낄 만큼 고통을 주는 노화는 100세가 넘어서야 나타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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